홍진기 세상사는 이야기ㅡ 貴人

며칠 전 서울 가는 버스 안에서 귀인을 만났다. 막 버스가 출발하려는 순간 한 분이 탑승하였다. 버스 앞부분에 내 옆자리가 비었으니 내 옆에 앉게 되었다. 이 분을 보니 손발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바로 파킨슨병 환자란 것을 알게 된다. 그래서 안전벨트를 대신 매 주고는 눈을 감고 이 분을 위하여 기도하였다. 어떤 사정인 줄은 모르지만 병마를 싸울 용기와 희망 그리고 힘을 달라고. 그런 후에 눈을 감은 채로 지내는데 얼마 가지 않아서 가방에서 사과를 꺼낸다. 두쪽으로 쪼개진 사과의 한쪽을 내게 건넨다. 그래서 대화를 나누기 시작하였다.

61세이신 여성 분인데 8년 전에 발병하여 서울 아산병원에 약을 받으러 올라가는 중이라고 한다. 그러면서 당신은 남에게 아무런 것도 해 줄 수 없고 도움만 받아서 늘 미안한 마음으로 지낸다고 한다. 나는 반색을 하면서 장애인이 당연히 누릴 권리를 우리가 제대로 해 주지 못하여 도리어 미안하다고 하였다. 이야기를 시작하는데 병에 걸린 직후에 남편은 떠나고 아이들 셋을 키웠다고 한다. 그래서 같이 사느냐고 물으니 당신 홀로 익산에서 산다고 한다. 출가한 딸 둘은 서울에서 살고 아직 결혼하지 않은 아들은 타지역에서 산다는 것이다. 왜 그러냐고 하니 딸들이 같이 살자고 하지만 절대로 같이 살 생각이 없다는 것이다.

이런 질환을 가진 사람은 움직이지 않는 순간부터 몸이 더욱 굳어지기 시작하고 죽음으로 가까이 가는 것이기 때문에 당신은 늘 걷는 일에 매진한다는 설명이다. 그러면서 산에 갈 때 이외에는 절대로 지팡이도 짚지 않는다고 한다. 등산용 스틱을 양손에 잡고 걸으면 더욱 좋을 것이라고 권하니 절대로 사용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면서 일반인의 싸늘한 시선이 부담이 되기에 절대로 장애의 티를 내지 않으려고 한다는 설명이다. 이 사회가 경제적으로 부유해졌지만 사회의 수준은 너무 낮은 것이다. 장애인에 대한 특별 배려가 당연함에도 도리어 그분들에게 냉소를 보내는 것에 가슴이 아팠다. 바지를 걷더니 오늘도 지팡이 사용하지 않고 걸어 오다가 넘어진 상처를 보여준다. 이런 강인한 의지를 가진 분을 만난 내가 큰 은혜를 받는다. 자식들에게도 절대로 신세를 지지 않고 사는데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설명이다.

나라에서 장애인 도우미 보조를 받아서 주중에는 점심을 준비해 준다고 한다. 나머지는 당신이 직접 끓여서 먹어야 한다고 설명하면서 이 나라의 복지 예산이 줄줄 세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을 피력한다. 주변에 멀쩡한 사람이 장애인 흉내를 내고 혜택을 받는 몇 몇 경우를 안다고 하면서 정말 필요한 사람에게 갈 혜택을 가로채는 일이 좋을 수 없다고 한다. 난 할 말이 없으니 세상에 사람이 많으니 다양한 사람이 있고 기존의 법망의 미비로 이런 문제가 있다는 말을 하였다.

여러 이야기를 나누는 중에 아직 90세 되신 노모가 살아계시다는 말을 한다. 그 노모는 딸이 이런 병에 걸린 것이 당신의 탓이라고 하면서 늘 눈물을 흘리는데 이점이 가장 아픈 점이라고 한다. 익산에서 서울로 올라오는 시간 내내 마음에서 은혜가 넘친다. 그래서 하차하기 직전에 내가 선생님에게서 너무 은혜를 많이 받아서 사과 값을 드리겠다고 하면서 조금의 성의를 표시하였다. 이런 귀한 분을 내 옆자리에 앉히게 하신 은혜에 깊은 감사를 드렸다.